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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계중심적 관점을 유보하고 그것을 인간중심적 관점으로, 즉 기술이 인간을 섬기는 것으로 전환해야 한다.

인간 중심의 기술. 이 책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거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현실을 돌아보면 그렇지 않다. 기술이 인간을 섬기는 게 아니라, 인간이 기술에 맞춰가는 경우가 너무 많다.

개발 복잡도를 낮추기 위해서 UX를 포기하는건 꽤 자주 있는 일이다. 물론 이건 상황에 따라 옳고 그름이 바뀔 수 있다. 모든건 트레이드오프가 있으니까.

나는 단순화된 정책을 선호한다. 복잡한 정책으로 인해 좋은 유저 경험을 얻는다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UX가 어려워진다. 이 단순화된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복잡함을 단순화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세부적인 정책이나 배경은 PM, PD가 더 잘 알고, 동작 원리나 공학적 지식은 개발자가 더 많이 안다. 결국 기술이 인간을 섬기게 하려면, 개발자도 정책과 UX를 함께 이해해야 한다. 코드를 잘 짜는 것만큼,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능력이 중요하다.

AI가 발전하면서 이제는 인간이 기술에 맞춰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AI가 설계한 아키텍쳐, UX는 잘해야 평균이다.

 

현재 과학기술의 많은 부분이 우리를 체험적 사고나 반성적 사고 중의 한쪽 극단으로만 몰고 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 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체험적 인지와 반성적 인지다. 체험적 인지는 주변 상황을 자동적으로 지각하고 반응하는 방식이고, 반성적 인지는 깊이 생각하고 의사결정할 때 작동하는 방식이다. 노먼은 학습도 같은 맥락에서 축적, 조정, 구조조정 세 단계로 나눈다. 축적은 사실의 누적이고, 조정은 어색한 수행이 자연스러운 수행으로 바뀌는 과정이다. 구조조정은 새로운 개념적 틀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반성적 인지가 요구되고 가장 어렵다.

개발자 관점에서 생각해봤다. 반복된 패턴을 자동으로 적용하는 건 체험적 인지다. 요구사항을 받으면 바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것, 이게 조정이 된 상태다. 하지만 베스트 프랙티스가 없는 문제 앞에서는 구조조정, 즉 반성적 인지가 필요하다. AI가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 완벽히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 바로 여기다.

나는 지금 어느 단계에 있을까. 기본 지식은 축적되었고, 일반적인 요구사항은 바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안다. 조정도 된 상태다. 하지만 트레이드오프를 직접 판단해야 하는 순간은 여전히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아직도 학습과 회고를 계속하고 있다.

가장 위험한 건 반성을 해야 할 때 체험하는 것이다. 강의를 봤다고 해서, 클론코딩을 했다고 해서 내 지식이 되지는 않는다. AI로 인해 주니어들이 학습의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얘기도 같은 맥락이다. 단기적으로는 속도가 빠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득이 아니다. AI를 적극 활용하면서 반성적 사고를 유지하는 건 쉽지 않다.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동기야말로 인지적 변수보다 훨씬 더 강력한 변수로 판명된 것이다.

이 말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좋은 조건을 다 버리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을 봤다. 반대로 나쁜 환경에서도 동기 하나로 버티는 사람도 봤다.

내가 나중에 리더가 된다면 개개인의 동기부여에 신경을 쓰고 싶다. 회사에서 해야하는 일이 개인의 동기부여를 저하시키는 일이고 내가 그걸 막을 권한이 없거나,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개개인의 동기부여를 챙길 수 있는 리더가 되고 싶다. 사실 리더가 아니어도 된다. 코드리뷰나 개발 논의만으로도 팀원의 동기를 끌어올릴 수 있다.

 

독자들이 자료에 대해 반성적으로 사고하고 추론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한, 책은 반성적 사고의 도구가 될 수 없다.

평소에 엄청 많이 하는 생각이다. 책을 빨리 많이 읽어봐야 아무 소용없다. 그래서 나는 책 한 권을 읽는 데 굉장히 많은 시간이 걸린다. 내 이전 경험을 되돌아보면서 칭찬하거나 반성하기도 하고, 저자의 의견에 반박하기도 한다. 이 독후감도 그 과정의 결과물이다.(솔직히 이번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더 시간을 써야한다..)

소크라테스는 책이 사고를 해친다고 했다. 지금의 우리는 인터넷, 숏폼, AI 앞에서 같은 논쟁을 반복하고 있다. 매번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인간의 반성적 사고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의 문제가 따라온다.

 

어떤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해답이 분명하도록 표상을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데이터를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사용자의 인지 부담을 결정한다. 의료 처방전 예시가 가장 명쾌했다. 약 복용 정보를 문장으로 쓰면 반성적 과제가 되고, 행렬로 바꾸면 체험적 과제가 된다. 표상이 바뀌면 문제의 난이도 자체가 달라진다.

비행기 표상 예시는 제품 개발과 완전히 동일한 문제다. 이것 때문에 많은 디자이너와 프론트 개발자가 고통받는다. B2B에서는 다양한 사용 케이스를 모두 담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앱은 복잡해지고, 익히는 데만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B2C도 앱마다 다르다. 하나의 케이스에 집중하는 제품도 있고, 여러 케이스를 담는 제품도 있다. 어느 쪽이든 표상의 결정이 핵심이고, 맥락에 따라 정답이 다르기 때문에 잘하는 사람이 드물다. 이 정답 없는 문제를 푸는 게 반성적 인지다.

카카오톡 개편이 좋은 예다. 메신저를 SNS처럼 바꿨다가 사용자 반발로 뉴스를 도배했고, 결국 기존 친구목록 모드와 피드 모드 두 가지를 함께 제공하게 됐다. 물론 이번 개편은 UX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이슈가 맞물려 있었고, 어느 정도의 반발은 예측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발이 예상을 훨씬 넘어섰다. 같은 데이터를 어떤 표상으로 보여주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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